철학

주저 없이 그리고 의연하게

모두의미디어 2024. 4. 12.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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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뺏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오는 나쁜 일이 무척이나 미웠다. 내가 행복한 상황을 질투하기라도 하듯 어딘가에서 슬픈 일은 찾아왔다. 그 상황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다 보니까 어느순간 무뎌져 있었다. 감정의 높낮이 변화에 무뎌진 것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의 교차점을 대하는 태도가 방어적으로 무뎌졌다.

 실컷 행복해해도 되고, 좋아해도 되는 일이 다가와도 멈칫 거리게 되었다. 여기서 지금 너무 행복해하면 나중에 올 불행에 더 힘들어질 거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찾아온 행복에게 애써 냉정하게 굴었다. 어차피 언젠가 떠날 거라는 것을 아는데 이 순간을 잠깐 덜 즐기고 나중에 덜 불행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내기를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나는 정말로 기쁨이 오면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이 덜 슬펐으면 싶어서 올라가는 감정을 최소로 만드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도빈 이제는 나쁜 감정만이 내 감정 곡선에 속해 있었다.

 밤공기가 좋다는 이유로 한번 웃는 법을, 좋은 일이 생겼다고 신이 나서 친구에게 재잘재잘 자랑하는 법을, 무심코 들어간 식당에서 내가 좋아하는 순두부찌개가 너무 맛있다며 즐거워하는 법을 모두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찾아올 불행을 대비하면서 살아가는 일상은 무채색이 되어버렸다.

 마음껏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 또한 사람이라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이 두려워 기쁨까지 잃어버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즐거움이 찾아오면 기꺼이 팔벌려 맞이하고, 어려움이 다가오면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시금 크고 작은 감정들에 섬세하게 반응하고 또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웃어야 할 일에 웃고, 슬퍼할 일에 눈물지을 수 있는 그 인간다움을 느끼는 중이다. 독자님들이 가끔 보내주시는 응원 메일에 행복함으로 하루를 채우고, 서점 사이트 도서 리뷰 칸에 적어주는 정성스러운 감상문에 하루를 기쁨으로 보관한다. 어쩌면 내일 당장 찾아올지 모르는 아득한 슬픔이 오더라도 다시 살아낼 수 있는 이유는, 다시 찾아올 행복 때문일 것이다.

 독자분께서 책을 가져오셔서 사인을 부탁하시면 사인과 함께 꼭 적어드리는 문구가 있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모든 독자님께서 기뻤으면 좋겠고, 혹시라도 어느 날 슬픔이 오더라도 다시금 기쁜 일로 덮어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쁜 일은 주저 없이 즐기시고,

슬픈 일은 의연하게 넘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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